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폰티우스 필라투스 (문단 편집) == 직위 == 필라투스의 직함은 유다이아(Iudaea) 속주의 총독(Praefectus[* 1961년에 지중해변의 카이사리아에 있는 로마 시대의 반원형 야외극장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이름이 포함된 라틴어 명각이 발견되었는데, 여기선 필라투스를 Praefectus라 한다.])으로서,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중부 지방을 다스렸다. 본래 이 지역은 헤로데 임금의 사후 4개로 분할된[* 3명의 분봉왕(τετρααρχεω)들이 각각 1/4를, 시리아 속주에서 1/4를 상속 받음.] 왕국 중 헤로데 아르켈라오스(Ἡρῴδης Ἀρχέλαος)가 다스리던 땅이었다.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폭정으로 AD 6년에 교체되고[* 즉 예수가 태어날 당시에는 유다이아 속주가 없었다. 때문에 루카 2장 1-2절에서 당시 통치자로 황제 [[아우구스투스]]와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만 언급할 뿐 유다이아 총독은 언급하지 않는다. 반면 세례자 요한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3장 1절에서는 "[[티베리우스]]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,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.. 있을 때"라고 하여 유다이아 총독을 언급한다.] 로마제국 유다이아 속주가 되어 총독이 파견되었다.[* 이후 AD 41~44년에 일시적으로 아그리파스(Ἀγρίππας) 1세가 다스렸다가, AD 44년부터 다시 로마 총독이 다스린다.] 필라투스의 직함을 총독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냐는 여부에 대해서 문제 제기가 있다. 필라투스는 [[유대|유다이아]] 속주를 관할하지만, 또한 더 큰 속주인 [[시리아]]의 총독 밑에 있었는데,[* 시리아 속주는 유다이아 속주보다 규모가 더 컸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중요성 또한 더 높았다. 로마 입장에서는 다마스쿠스에 더 높은 직위의 행정관을 앉히는 것이 현실적인 결정이었다.] 이 때문에 그의 직함을 총독으로 번역하는 게 [[오역]]이 아니냐 하는 것. 일단 라틴어로 쓰자면 필라투스는 Praefectus이고 시리아 총독은 Proconsul(직역하면 '전직 [[집정관]]')이므로 구분이 된다. 당시 필라투스의 직함은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 군단장이자 시리아 Proconsul의 수석부관 겸 유다이아 속주의 Praefectus이었다. 그러나 당대 사람들도, 성경의 저자들도 속주 총독들의 직함 구분을 엄밀히 하지 않았다. 타키투스는 필라투스의 직함을 엄밀하지 못하게 Procurator라고 전하며, [[루가 복음서]]에서는 시리아 총독과 유다이아 총독 모두 ἡγεμον(헤게몬)[* [[헤게모니]]의 어원이 된 그 단어이며 정확한 뜻은 '이끄는 자'. 군주, 통치자, 총독 등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이 된다.]으로 적는다. [[사두정치]] ~ [[테오도시우스 1세]][* 3C 말 ~ 4C 말로 약 100년, 중간에 [[콘스탄티누스 왕조]]와 [[발렌티니아누스 왕조]]가 있음.] 시대의 로마사를 이야기할 때 정제와 부제를 가리지 않고 이해가 쉽도록 모조리 황제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, 이런 경우를 보면 무작정 오역이라 몰아붙이긴 힘들 것이다. 성경의 저자들도 당대 사람들도 총독 직함의 구분을 엄격히 하지 않았는데,[* 로마사 연구자나 역덕후가 아니고서야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. 어차피 피지배민들 입장에서는 Praefectus나 Procurator나 Proconsul이나 모두 로마에서 오신 높으신 분일 뿐이고, 심지어 타키투스 같은 문사{{{-2 (文士)}}}들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았다.] 성경의 원문을[* 시리아 총독이든 유다이아 총독이든 ἡγεμον(헤게몬)이다.] 벗어나서까지 독자들 헷갈리게 번역할 필요는 없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